나의 이야기

[맛 여행]전남 보성 벌교의 맛 여행

봄의화신 2010. 9. 10. 12:07
전남 보성군 벌교 맛여행



갯벌 사이 물길로 드나드는 배들은 저녁 무렵이면 숭어를 가득 싣고 돌아온다. 워낙 먹거리가 풍부해 숭어가 팔뚝보다 더 크다.


빛으로 치장한 봇재다원(위 왼쪽), 꼬막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집으로 향하는 노부부.


1.꼬막무침. 2.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됐던 벌교. 이곳에는 일제강점기 때 지었던 건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마을 앞 다리는 그 유명한 벌교 홍교다. 3.대포리 앞은 온통 갯벌이다. 이곳의 갯벌은 람사협약(국제습지보전협약)에 국내 최초로 등재됐을 정도로 생태학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널배를 타고 나간 아낙들은 해가 저무는데도 돌아올 줄을 모른다. 캐고 또 캐고 바구니에 넘쳐나는 참꼬막들. 지친 몸이지만 절로 웃음이 난다. 비릿하면서도 쌉싸래하고 또 고소한 참꼬막. 요즘 벌교 여자만은 참꼬막 맛이 그야말로 무르익었다.

겨울 들목부터 이듬해 봄이 오기까지 움츠러들어야 할 시간에 벌교 일대는 오히려 삶의 활력이 넘친다. 그 힘의 원천은 여자만에서 나는 참꼬막이다.

여자만? 처음에는 여자들만 사는 곳인가 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고흥 앞바다에서부터 벌교를 거쳐 순천으로 이르는 말굽형 바다를 이르는 말이다. 여자도라는 작은 섬이 있어서 여자만이라는데 확실치는 않다. 여자만의 서북쪽에 자리한 벌교, 그중에서도 대포리는 참꼬막 산지로 유명하다. 65가구 120여 명의 주민들이 사는 대포리는 전형적인 어촌마을. 마을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고 겨울이면 아낙들이 참꼬막을 캐러 펄로 나간다.

물이 빠지면 대포리 앞바다는 거대한 개펄밭으로 변한다. 이곳은 국내 해안습지로는 처음으로 ‘람사’(국제습지보전협약)에 등재된 생태학적으로도 귀중한 곳. 창녕의 우포늪과 신안군 장도습지 등이 람사에 보전습지로 등재되긴 했지만 해안습지가 람사에 이름을 올린 것은 여자만이 최초다.

이 일대는 오염원이 없어 수산자원이 풍부하다. 여름장마가 지나면서 가을까지 짱뚱어가 많이 나고 그후로는 낙지와 전어가 바통을 이어 받는다. 찬바람이 불고 겨울 들목이 되면 드디어 참꼬막과 피꼬막, 맛조개 등이 영근다. 또 이 시기에는 숭어도 풍년이 드는데 어른 팔뚝보다 더 큰 것들이 펄떡대며 바닷물을 차고 오른다.

꼬막은 참꼬막과 새꼬막 그리고 피꼬막 세 종류로 나뉜다. 새꼬막은 양식, 자연산은 참꼬막과 피꼬막이다. 그중 맛은 역시 참꼬막이 제일이다. 참꼬막은 회로 무쳐 먹거나 삶아서 그냥 속을 내먹거나 양념에 무쳐 먹는다. 전을 부치기고 하고 젓갈을 담기도 한다. 참꼬막은 4년 된 것이 가장 맛있다. 껍데기에 가로줄무늬가 나 있는데 그 사이에 나무의 나이테처럼 분간 가능한 골이 있다. 이것으로 꼬막의 나이를 가늠한다.

대포리 아낙들은 참꼬막철이 되면 널배를 끌고 펄로 향한다. 스노보드처럼 넓적한 나무판자를 두고 널배라고 한다. 아낙들은 널배에 한쪽 무릎을 대고 다른 한쪽 다리로 펄을 밀면서 미끄러지듯 나아간다.

꼬막은 대포리 바로 앞 펄에서도 잡히지만 아낙들은 300m쯤 떨어진 돌섬까지 간다. 펄은 가만있으면 몸을 그대로 삼켜버린다. 널배를 이리저리 밀며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보물찾기 하듯 펄을 뒤집으며 참꼬막을 캐는 아낙들. 깔깔거리는 웃음이 정겹다.

해는 뉘엿뉘엿 서녘 하늘로 떨어지고 개펄은 황금빛으로 물든다. 널배가 낸 처절한 생의 길 위로 어둠이 떨어질 무렵, 다시 그 길을 타고 아낙들이 하나둘 돌아온다.

참꼬막은 벌교 읍내로 나가 전국 각지 밥상으로 보내진다. 읍이라고는 하지만 벌교는 손바닥만 한 작은 동네다. 벌교라는 명칭은 ‘떼다리’란 우리말을 한자로 옮긴 것으로 벌교리에 있는 홍교(무지개처럼 둥근 모양의 다리) 자리에 예전에 사람들이 강물을 건너다닐 수 있도록 뗏목으로 다리를 만들어 사용한 것이 유래가 되었다.

떼다리가 있었던 곳에 자리한 홍교는 현재 남아 있는 홍교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조선 영조 5년(1729년)에 놓인 이 다리는 아직도 벌교 사람들의 주요 이동로가 되고 있다. 축조 당시는 길이 80m, 폭 4m로 거대했지만 지금은 약 20m 정도로 짧아졌다. 다리 밑으로는 여전히 개천이 흐르고 주위에는 갈대가 노랗게 익어 있다.

벌교는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가 됐던 곳이기도 하다. 이 마을에는 지금까지도 일제강점기 때 지은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중도방죽과 남도여관, 금융조합 등이 그 시절 그대로의 모습이다. ‘염상구’와 ‘땅벌’이 주먹대결을 펼쳤던 철교도 아직 남아 있다. 다만 이 다리 아래로 드나들던 통통배는 이제 없다.

“벌교 가서 돈 자랑 하지 말라”는 말은 허명이 아니었다. 이 좁은 동네는 일제가 수탈을 위해 조성한 곳. 군산이 호남 곡창지대의 쌀들을 실어갈 요량으로 발전시킨 항구라면 벌교는 고흥반도와 순천 등을 잇는 포구로서 교통의 요지였다. 그래서 당시 이곳에는 우리나라 사람만큼이나 일본 상인들이 득시글거렸다. 그러다보니 돈이 넘쳐났다. 하지만 그것도 옛말. 고속도로가 뚫리고 산업이 발달하면서 벌교는 쇠락했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벌교는 문학기행의 명소로 거듭날 수 있었다. 소설 속 인물들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행 장소로 벌교만큼 좋은 곳은 없다.

날씨만큼이나 다소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의 벌교는 그러나 겨울이면 잠에서 깨어난다. 참꼬막 때문이다. 새벽 5시를 조금 넘긴 시간부터 벌교 읍내 수산시장은 소란스럽다. 전국 각지에서 꼬막을 사기 위해 상인들이 몰려들기 때문이다. 상인들끼리 흥정벌이는 활기찬 벌교는 낮 동안의 벌교와는 또 다른 모습이다.

벌교여행 뒤 보성으로 발길을 돌려보자. 보성은 차밭으로 이름이 난 곳. 일제강점기 때부터 조성된 차밭만도 10여 개. 국내 최대의 차 산지로 면적이 100만 평에 이른다. 우리나라 차의 40%가 보성에서 생산된다. 보성읍에서 회천면에 걸쳐 대규모 차밭단지가 펼쳐져 있다.

차밭여행은 물론 봄부터 여름까지가 가장 좋다. 이때의 차밭은 싱그러운 연초록색이다. 짙은 녹색으로 변한 지금도 좋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낮이 아닌 밤여행이다.

밤에 무슨 차밭이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직접 가보자. 오색의 빛이 차밭을 물들이는 모습이 장관이다. 그 유명한 대한다원에서 율포해수욕장으로 내려가다보면 봇재가 나오는데 이 일대 다원이 요즘 고운 ‘빛 화장’을 한 곳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수만 개의 꼬마전구로 밝혀놓았는가 하면 환상적인 은하수 터널을 설치해 놓기도 했다. 다원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빛으로 치장돼 발길을 밝힌다. 다향각 일대에는 일렁이는 차나무의 선을 따라 전구를 설치해 멀리서 보면 마치 빛이 파도를 치는 듯하다.

여행 안내

★길잡이:
호남고속도로 주암IC→27번 국도→벌교→843번 지방도→대포리

★잠자리: 벌교 읍내는 잠자리가 그리 많지 않다. 홍도회관 인근에 그랜드모텔(061-858-5050)이 있다. 나머지는 대부분 장급여관이다. 보성으로 간다면 골망태펜션(061-852-1966)이 대한다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율포해수욕장으로 가면 숙박업소가 많다.

★먹거리: 겨울철 벌교는 꼬막이 제 맛이다. 벌교 읍내에 꼬막전문식당이 많다. 그중 벌교제일고 앞에 자리한 홍도회관(061-857-6259)이 유명하다. 꼬막회무침과 꼬막전 등 꼬막으로 만든 다양한 요리가 일품이다. 꼬막을 넣어 끓인 된장국도 시원하다. 1인 1만 2000원. 보성으로 건너가면 녹돈을 맛보는 것도 괜찮다. 차의 고장답게 녹차를 먹여 키운 돼지고기가 맛있다. 회천면 동율리 보성녹돈(061-853-7348)이 알아준다.

★문의: 보성군청(http://www.boseong.go.kr) 061-852-21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