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글

길 안내 쪽지

봄의화신 2017. 8. 23. 06:39

 

길 안내 쪽지

저는 청각장애인입니다.
게다가 성대가 마비되어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희미한 바람소리만 나옵니다.

저는 서울이 아니고 다른 지역에 사는데
일이 있어서 서울에 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버스정류장에 서 계신 분께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이 어딘지를 물었는데
열심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다가 제가 듣지 못함을 밝히자
전혀 꺼리거나 귀찮아하는 모습 없이
바로 본인의 수첩과 펜을 가방에서 꺼내어
적어서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사실 제 경험상으로는,
열 명에게 길을 물어보면 그 중에서
반 이상은 무시하는 게 보통입니다.
제대로 나오지 않는 목소리 때문에 놀라서
마치 괴물을 보는 듯한 얼굴로 쳐다보기도 하구요.
그리고 처음에는 가르쳐주려 했으나
듣지 못하기 때문에 적어주시면 안되겠느냐고 하면
귀찮아하며 자리를 피합니다.

그런데 저 글을 적어주신 분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이
적어주신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저를 이해시키려고 몇 번이나 되풀이하고,
밑줄을 긋고, 손짓을 동해가며,
인상 한 번 쓰지 않고 친절히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별 것 아닐지도 모르는
저 쪽지가 저에게는 어찌나 고맙던지요.
덕분에 길도 잘 찾았고 일도 잘 마쳤습니다.
저에게 베풀어주신 그 따뜻한 친절은
평생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라 은 미 (새벽편지 가족)]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분들이 있는 한
철벽같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무관심도
조금씩 무너질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선선한걸 보니 가을바람 인가 봐요.
사는 것이 보내고 맞는 생활이
계절을 따라가나 봐요.
아쉬워지는 여름 낭만
코스모스 한들한들 거리마다 가을을 알리고
하지만 아직 매미소리도 이따금씩 들려오네요.
밤에는 귀뚜라미가 울고
추억이 그리운 가을입니다.
즐거운 수요일 아름다운 날 보내시기 바래요.

2017년8월23일 수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