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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에 관한 시 모음

봄의화신 2010. 7. 26. 09:42

 

<날씨에 관한 시 모음> 박소명의 '나뭇가지 온도계' 외


+ 나뭇가지 온도계


나뭇가지가

봄바람 품에

손 넣어 본다.


―딱 좋은 날씨야

나뭇가지가

햇살의 온도를 잰다.


―이만하면 됐어

닫혔던

문 연다.


―맘놓고 나가 놀아라

우르르

꽃송이들

내보낸다.

(박소명·아동문학가)



+ 온도계


보리밭에 작은 물결이 일면

울타리 기어오르는 호박 덩굴처럼

사알짝 올라가고.


봉숭아꽃 필 무렵엔

해바라기 대궁모양

쭈욱쭉 뻗어가고.


햇빛을 가득 담은 석류가 터지던 날

달빛에 메밀꽃 강물 되어 여울질 때

지난 해 입었던 아가 옷만큼 줄어들더니,


문풍지가 부엉이 울음을 흉내내고

별들이 유리창에 얼어붙던 밤

몽당연필같이 작아진 빨간 기둥.

(김완성·아동문학가)



+ 곤충들의 날씨


개미가 줄지어 간다

비가 오려고


청개구리가 울어댄다

비가 오려고


장구벌레가 물 위로 떴다

비가 오려고


곤충들은 행동으로

알려주고 있는 거래.

(이근우·아동문학가)



+ 개기      


옷을 갠다

양말도 개고

이불도 개고

빨래도 갠다


더 갤 것이 없어


하늘에 널린

구름을 갠다

구름을 개니

날씨가 갠다

날씨가 개니

마음도 갠다

(박방희·아동문학가, 1946-)



+ 맑은 날


아지랑이의

일렁이는 살결이 보인다.

환한 물의 속살도 비친다.


산의 둥그스럼한 어깨도

잘 보인다

푸름에 젖어

잔잔한 어깨.


슬쩍했던 거짓말이

맘에 걸린다.

(박두순·아동문학가)



+ 천둥은


"나 내려간다!"

비가

세상에 알리는 기척.

옛날, 할아버지

방문 앞에서 하시던 헛기침 같은 것.


개미는 문단속 잘하고

병아리는 엄마 품에 숨고

빨랫줄에 마른 빨래는 얼른 걷히고

풀잎들은 어깨를 낮추고,


"자아, 나 내려간다!"

우르르

천둥이 울린다.

(이혜영·아동문학가)



+ 태풍주의보


암만 바람 불어도

끄떡없어야 한다.

흔들고 흔들어도

짱짱하게 맞서야 한다.


네가 쿵, 떨어지면

할머니 가슴 무너진다.


사과야, 힘세지?


끝끝내

끝끝내

매달려 있어야 한다.

(김미혜·아동문학가)



+ 소나기


소나기가 그쳤다.


하늘에

세수하고 싶다.

(김영일·아동문학가)



+ 맑은 날


이렇게 하늘이 푸르른 날은

너의 이름 부르기도 황홀하여라


꽃같이 강물같이 아침빛같이

멀린 듯 가까이서 다가오는 것


이렇게 햇살이 투명한 날은

너의 이름 쓰는 일도 황홀하여라

(이기철·시인, 1943-)



+ 흐린 날이 난 좋다


흐린 날이 난 좋다


옛 사랑이 생각나서 좋고

외로움이 위로 받아서 좋고

목마른 세상

폭우의 반전을 기다리는 바람이 난 좋다


분위기에 취해서 좋고

눈이 부시지 않아서 좋고

가뜩이나 메마른 세상

눅눅한 여유로움이 난 좋다


치열한 세상살이

여유를 갖게 해서 좋고

가난한 자 마음 한 켠

카타르시스가 좋다


그리움을 그리워하며

외로움을 외로워하며

누군가에 기대어 쉴 수 있는

빈 공간을 제공해 줘서


흐린 날이 난 좋다

(공석진·시인, 경기도 송탄 출생)



+ 일기예보


내게 우산 같은 아내가

아침 화를 냈다


어젯밤 늦은 건

벌레 먹은 하현달이 슬퍼서

떨어진 달빛 부스러기가 서러워서

자작 술에 시간을 타서 마신 탓인데


아내여, 오늘 날씨는

기압골 영향으로 후텁지근하겠고

안개에 가려 한라산이 잘 보이지 않겠으며

바람이 약간 세고

탑동바다 물결이 높게 일겠음

밤에는 소나기가 왔다갔다 하겠으니

우산을 안 가진 사람은 일찍 귀가하는 게 좋겠음

(양전형·시인, 제주도 출생)



+ 일기 예보


아홉 시 뉴스는 보지 않아도

일기예보는 꼭 봐야지

밑천은 한 몸뚱이라던데

감기에 걸리면 쿡쿡,

그 꼴 좋겠네


아홉 시 뉴스는 보지 않아도

팬더의 재롱은 꼭꼭 봐야지

대나무 씹는

오물오물 고 귀여운 입술,

웃음을 까먹지 말아야겠네


아홉 시 뉴스는 보지 않아도

서해안 식인상어 얘기는

놓치지 말아야지

5월이면 으흑 피 냄새 따라

슬금슬금 쫓아온다던데

무릎의 피도 감춰야겠네


뉴스는 아예 보지 않아도

보고싶은 뉴스는 꼭꼭 봐야지

자칫 잃어버릴 따스한 가슴

눈물 한 점 뚜욱 떨어뜨리면

내사 다시 뜨거워지고 싶은 걸


아아, 냉동고 속에 쳐 넣은 심장

다시 꺼내어 살펴봐야지

잘 있었니?

그간 무고하였니?


아홉 시 뉴스는 보지 않아도

진복팔단은 꼭꼭 읽어봐야지

거리를 나서면 뙤약볕 아래

기다렸다 졸졸 따라나서는

아, 강아지 같은 슬픔이여......  

(홍수희·시인)



+ 한파주의보

  

동안은 숨 쉬는 데 너무 충실하였네

그대가 내 마음에 들어왔다

나가는 기척도 듣지 못했어

비로소 세상에 한파주의보가 내리고

내 마음에도 거꾸로 매달린 고드름이 보일 즈음에야

그대 다녀간 발자국이 어름어름 눈에 비치네

잊었던 그리움이 한꺼번에 밀려와

유리창을 덜컹대며 문을 열어라 하네

(홍수희·시인)



+ 한파주의보


섬그늘


꽁꽁 얼어붙은 대지 위로

뽀하얀 잔설이 수를 놓고

겨울 내내 영하15도의 한파주의보


어제 쪼잘대던 버드나무 위 까치는

밤새 괜찮은지?


노천 논 위의 스케이트장은 아이들의 세상

넘어지고 넘어져도 신나는 세상


전동차 객실 난방은 1050W 모두 틀어도

춥다고 아우성이다

지금은 한파주의보 발령 중!


얼어붙은 대지와 움츠린 사람들의 얼굴에

따스한 햇살 비추는 그 날

들판에서 한파와 시름하는 들풀까지도

끈질긴 생명력을 시험하고 있다.

(윤용기·시인, 1959-)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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